이케맨 빌런/프롤로그

프롤로그 1.인생이 동화라면

루달스... 2023. 3. 28. 17:05

인생이 동화라면 행복해지는 건 간단하다.
"하면 안되는 짓"을 하지 않으면 된다. 예를 들자면, 그래......
들어가서는 안되는 숲, 열어서는 안되는 문, 알아서는 안되는 비밀.
그리고—

케이트 : 제 담당은 이걸로 전부인거죠? 우편물 분류, 감사합니다.
동료 : 어이, 가장 위에 있는 건 러브레터 아니야? 책임 막대하네, 케이트.
케이트 : 어떤 편지라도 책임은 같아요. 쓴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으니까.
케이트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편지 다발을 배달 가방에 넣고 우편국의 문을 열자—

(오늘은 한층 더 활기차네...... 사교 시즌이었나?)

빅토리아 여왕 폐하의 치세, 문자 그대로 세계 제일로 번영하고 있는 이 영국의 수도•런던.
이민, 노동자, 산업자본가, 그리고 귀족들이 서로 모여 북적거리며,
모두가 각자의 고민과 기쁨에 가득찬,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고 있다.

케이트 : 자아, 오늘도 힘차게 배달 배달!

나는 그런 거리에서 우편배달원을 하고 있는 몹시 평범한 시민이다.

(후우, 지쳤어.)

여느 때처럼 편지를 전해주는 사이에 하나둘씩 오늘도 가스등이 켜지기 시작한다.

(오늘 남은 건, 앞으로 2건이려나. 다음 주소는— 앗.)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서 손에서 한통의 봉투가 공중에 떠올랐다.

(안돼......)

봉투를 태운 바람은 어둑한 골목으로 지나갔다.

케이트 : 잃어버리면 큰일이야......!

서둘러 쫒아가려고 하는 것보다 빠르게 봉투는 마치 빨아당겨진 것처럼 어느 한 곳에 떨어져 있었다.
골목에서 나타난 황혼에도 눈부신 은발의 남성의 곁에.

(다행이다......!)

케이트 : 실례합니다, 그거 배달중인 물건이에요.
??? : ......

서둘러 달려가니 남성은 친절하게도 몸을 굽혀 발 밑에 떨어진 봉투를 주워줬다.

??? : 여기있습니다, 레이디.

주워서 건내준다, 그저 그것 뿐인데도 그의 인간을 뛰어넘은 미모와 우아한 태도 탓인지 시선을 빼았겼다.

케이트 : ......감, 사합니다.
??? : 별 말씀을요.

(이 사람의 눈...... 새빨개. 마치......)

—피 같아.
어두운 골목, 내밀어진 손바닥, 핏빛 눈동자...... 그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어딘가로 나를 끌고갈 것 같아서, 오싹하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붉은 눈동자의 남자 : 배달 건수는 앞으로 2건인가.
케이트 : ......네?

그의 중얼거림에 퍼뜩 제정신이 들었다. 그 순간, 런던의 소동이 귀에 되살아났다.

케이트 : 죄송합니다, 멍때려버려서—
붉은 눈동자의 남자 : 서두르는 게 좋아. 곧 해가 질테니.

엇갈리는 순간 속삭이더니 그는 시원스럽게 인파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미약하게 남은 달콤한 장미 향기가 어째선지 가슴을 술렁이게 했다.

붉은 눈동자의 남자 : 기다리게 했군, 빅토르.
흑발의 남자 : 너라면 몇시간 기다려도 행복하지. ......이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붉은 눈동자의 남자 : 그래. 멋진 목소리로 노래할 듯한 귀여운 울새가 있었지.
흑발의 남자 : 흐음. ......네가 흥미를 가질 인물이라면 나도 신경이 쓰이네.

(이상한 사람이었지. 배달건수에 대해 어떻게 안걸까......?)
(복장을 봐서는 귀족 분 같았으니까...... 더이상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행스러운 듯한, 조금 더 이야기 해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한 그런 기분으로 거리를 걷는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좋으니까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해주는 일을 골랐다.
누군가의 마음을 계속 전해주는 나날에 어떠한 불만도 없고, 지금의 일상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행복한 인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한발짝 내딛으면 세계가 바뀔지도 모른다고, 도 생각한다.

(없는걸 달라고 무리하게 조르는 느낌인걸까.)

케이트 : 뭐, 상관없나. 오늘도 제대로 편지를 전해줬으니까.

자기암시를 걸 듯이 자신을 칭찬한 그 순간이었다.

??? : 기다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