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맨 빌런/프롤로그

프롤로그 4.사신이 기다리는 성으로

루달스... 2023. 3. 29. 07:37


(도망치지, 못했어......)

수수께끼의 남성 8명은 이름을 말한 나를 마차에 태우고 우아하게 밤의 거리를 빠져나왔다.
창문 너머를 런던의 거리들과,
호사로운 궁전이 스쳐지나가고—
어느샌가 울창한 숲으로 마차는 힘차게 나아갔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거기다 나, 대체 어떻게 되는걸까.)

배달물은 그 저택에 두고왔지만, 그 몫의 급료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하물며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집단으로 움직이고 있고, 같은 장소로 향하고 있다는 건 이 분들은 아마 어떠한 조직의 사람)
(그럼...... 지금부터 분명 책임자에게 나에 대해 보고하러 가는거겠지.)

"궁전의 사신"...... 윌리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붉은 눈동자의 남성은 확실히 그렇게 말했다.

(그 분께 놓아주길 부탁하지 않으면, 나는—)

새빨간 정경이 되살아나 핏기가 싹 가셨다.

신사적인 남자 : 케이트 씨.
케이트 : 네......!?

퍼뜩 얼굴을 들자 미스테리어스한 미소를 띄운 신사가 창문 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차창을 보니 마차는 어느샌가 숲을 빠져나와 수면 위에 놓인 도개교를 건너고 있었다.

신사적인 남자 :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당신의 인생의 종점, 이 될지도 모르는 악의 근거지...... 가 아니라 저희의 거점입니다.
케이트 : 뭐......

(뭐야, 이게.)
정중한 에스코트로 마차를 내린 순간, 눈 앞에 나타난 고딕 양식의 성에 숨을 들이켰다.
사람의 눈을 피하듯이 사방을 숲과 연못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밤하늘을 꿰뚫는 맑게 트인 첨탑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
무심코 넙죽 엎드리고 싶게 만들 정도로 장엄했다.

(런던에 이런 성이 있었다니......)

케이트 : 이게...... 현실, 인가요......
신사적인 남자 : 네, 유감스럽게도. 꿈도 환상도 아닙니다. 도망치지 못한 괴로운 현실, 이란 거죠.

(현실...... 이라고 할까, 방금 전 이 사람, 터무니 없는 말을 하지 않았어?)
("인생의 종점"이라던가, "악의 근거지"라던가...... 아아, 안되겠어, 머리가—)

어질하고 현기증이 나서 다리가 휘청거렸다.
탁, 하고 누군가와 부딪혀서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케이트 : 죄송합니다.
금발벽안의 남자 : ......상관없어. ......너는, 괜찮나?

(가까워......)

어깨를 감싸준 남성은 섬세한 듯한 금발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사람...... 너무 아름다워서, 무서워. 꼭 비스크돌 같아.)

미술품과 같은 조형 속에서 겨우 어두컴컴한 눈동자만이 살아있는 생물과 같은 온도를 가지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케이트 : 괜, 찮아요. 감사합니다.
금발벽안의 남자 : ......그래.

(어, 어라......)

금발벽안의 남자 : ............

(놓아주지 않아......)

당황해하고 있으니 옆에서 뻗어져온 손이 쿡하고 금발 남성의 손을 찔렀다.

고양이 같은 남자 : 엘 님, 앞지르기는 금지.
고양이 같은 남자 : 케이트 쨩, 나랑도 이야기하자? 너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와악......)

고양이가 꼬리를 감듯이 슬쩍 손을 붙잡혀, 남성에게 양측으로 끼여 당황했다.

엽총의 남자 : 이봐. 두사람 다 그런건 나중에 해둬. 이번에는 빅토르에게 보고하는 게 최우선이잖아?
엽총의 남자 : 깊게 알아가는 건 아가씨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고 나서도 늦지 않아.

도와준 건 지적인 용모의 대장부였다.
안경 속의 이지적인 눈빛과 차분한 분위기가 소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켜줬다.

(지금은 이 사람이 가장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케이트 : ......어떻게, 되는건가요, 저는......?

계속 묻고싶었던 질문이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엽총의 남자 : 글쎄? 그건 우리들 상황에 따라서 다르지.

씩하고 떠오른 에고이스틱한 미소에 나는 머릿 속에서 "이야기가 통하는 기분이 든다"라는 문장을 말소했다.

윌리엄 : 케이트, 이쪽이다. 따라오렴.
케이트 : ......네, 렉스 님.
윌리엄 : 아하하!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도록. 윌리엄이면 된다.
케이트 : 알겠습니다...... 윌리엄 님.

(와아...... 굉장해.)

성에 한 걸음 발을 들여놓자— 마치 세계가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이런 장소에 인생에서 한번이라도 발을 내딛어 보다니......)

외관에 뒤떨어지지 않는 장려한 성은 영국 왕실의 소유물이라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위험하고 신비하고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가— 끝없이 넓게 눈 앞에 펼쳐졌다.

(범죄자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근거지이지만......)
(......아름다워)

윌리엄 : 마음에 든 듯 하군.
케이트 : 윽!?

귓가에 속삭여져서 오싹하고 등골이 떨렸다.
휙하고 뒤를 돌아보니 큭큭거리며 유쾌한듯이 윌리엄 님이 웃고 있었다.

윌리엄 : 자, 가지. 사신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