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버트 : 케이트...... 잠시 시간을 내주겠어?
알폰스 : 갑작스럽지만 당신과 저희에게 임무가 내려왔습니다.
오늘은 예정도 없어서 책이라도 읽으면서 보내자.
그렇게 생각해서 궁전에 있는 도서관을 방문한 내 앞에 나타난건,
빛을 모아 자아낸 듯한 금색 머리카락과 밤에게 사랑받은 듯한 젖은 까마귀 깃털색 머리카락의 두사람.
케이트 : 두분과...... 제게, 임무, 인가요?
엘버트 : 그래. 케이트에겐—
알폰스 : 여왕님—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케이트 : ............네?
알폰스 : 폐하를 암살하려는 계획이 있는 듯 합니다.
케이트 : 암살......?
엘버트 : 실은 드문 이야기는 아니야...... 영광이 빛날수록 어둠도 진해져.
엘버트 : 요 몇년 사이에 몇번이고 암살 미달이 일어나고 있어.
알폰스 : 폐하는 조용함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셔서 그다지 공적인 자리에 얼굴을 내밀지 않으시지만.
알폰스 : 귀족 영애들이 사교계에 입성하는 데뷔탕트에는 출석하지 않으실 수 없습니다.
케이트 : 그걸 노리고 있다, 라는 건가요. 어떻게 아셨나요?
알폰스 : "데뷔탕트에서 반드시 폐하의 목을 뵙겠다"라는 취지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 자가 있다고 소문이 되어있습니다.
(목을 뵙는다......라니 불온한 표현이네.)
(어쩜 그렇게 추악한 생각을 하는걸까.)
케이트 : 폐하는, 어느 곳에?
알폰스 : 빅토르 님이 동행하셔서 비밀 루트로 피난하셨다고 합니다.
케이트 : 그런가요...... 그럼 일단은 안전하겠네요.
알폰스 : 다만, 그렇게 되면 문제가.
케이트 : ......그 데뷔탕트에 출석할 수가 없죠.
알폰스 : 그렇습니다. 많은 수의 귀족이 참가하는 대단히 중요한 행사입니다.
엘버트 : 거기다...... 올해는 그 직후에 시즌 첫 파티가 열려. 폐하도 초대받았어.
엘버트 : 왕실을 오랫동안 지지해온 공작가가 여는 파티야.
엘버트 : 초대받았는데 얼굴을 비추지 않아서 그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폐하로서도 원치 않는 일이지.
알폰스 : 라는 이유로 당신에게 대역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엘버트 : 케이트를 위험에 드러내지 않는 방법이 없는지 제안해봤지만......
알폰스 : "너희가 함께하면 괜찮잖아! 거기다 케이트도 분명 즐겨줄 거야!"
알폰스 : 라고 하셔서.
케이트 : 모여주신 귀족 분들께 거짓말을 하는 건 불성실하지 않나요......?
알폰스 : 폐하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대역(카게무샤)을 쓰는건 자주 있는 일 아닌가요?
엘버트 : 이번에는 긴급 사태니까......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왕 폐하의 대리로서 영애분들의 알현과 사교 파티에 참석.)
(상상한 것만으로 중압감에 짓눌릴 것 같지만......)
케이트 : 폐하와 빅토르가 저희라면 맡길 수 있다고 판단해주신 거라면.
케이트 : 거기다 폐하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면...... 할 수 있는만큼 힘낼게요.
엘버트·알폰스 : ............
알폰스 : 후후, 그렇게 나오지 않으면 안 되죠.
알폰스 : 배짱있는 울새 씨가 어떤 유쾌한 일을 저질러줄지 기대되네요.
알폰스 : 이런 찬스도 그다지 없습니다.
알폰스 : 아름다운 드레스로 멋을 내고 맛있는 음식에 정신을 잃으며 크게 만끽하면 되는겁니다.
엘버트 : 네가 승낙하는 거라면 나도 이의는 없어.
엘버트 : 너는마음을 편하게 하고...... 우리에게 몸을 맡겨주면 돼.
케이트 :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알폰스 씨는 향락적으로, 엘버트 님은 담담하게.
임무와 마주하는 자세는 정반대 같았다.
(이 두사람, 전혀 마음이 맞을 것처럼은 안 보이지만...... 자주 함께 행동하네.)
알폰스 : 폐하의 앞에서 탐욕을 발휘하지 말아주세요, 귀찮으니까.
엘버트 : ......그래 ......조심할게.
(알폰스 씨는 엘버트 님의 종자같은 거라고 했지만.)
(대등하거나 오히려 반대로 느껴질 때가 있고......)
(이 임무에서 두사람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 좋겠네.)
케이트 : 지...... 지쳤어요...... 앉아서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인데도......
무거운 왕관에 신장을 속이는 구두, 깊게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몸에 착용한 여왕 폐하— 아니 나는,
데뷔탕트를 어떻게든 빠져나와 별실의 소파에 깊게 파고들었다.
알폰스 : 멋진 여왕 폐하 연기였습니다, 케이트 씨.
알폰스 : 리암 씨의 제자로 들어가신 다음 배우를 목표로 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엘버트 : ......영애들도 시종조차도 눈치채지 못했어.
엘버트 : 암살자도 나타나지 않았네...... 잘 된 일이야.
케이트 : 그렇네요, 정말로.
케이트 : 영애들에겐 이제부터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의식이니까......
케이트 : 엉망진창이 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긴장한 표정으로 인사를 올리는 영애들의 모습이 눈 앞에 남아있다.
일개 서민인 나도 화려하기만 하지 않다고 소문으로 들은 사교계로의, 불안과 기대가 전해지는 진지한 표정 뿐이었다.
케이트 : ......제가 이런 걸 생각하는건 우습지만,
케이트 : 깨달았을 땐 정말로 그녀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어요.
엘버트 : ......그렇구나.
엘버트 님은 소파의 옆에 앉더니 내 베일을 상냥하게 올리며 물을 건네주었다.
엘버트 : 목숨이 위험에 빠져있는데도 그런걸 생각하는 너도...... 무척 멋지다고 생각해.
케이트 : ......감사합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쩐지 부끄럽네......)
물을 마시는 사이에도 엘버트 님의 시선이 따라오는 것 같아서 진정되지 않았다.
케이트 : 저, 저기...... 엘버트 님, 제 얼굴에 뭔가가......?
엘버트 : ............
엘버트 님의 시선은 가끔 사로잡혀서 몸의 움직임을 빼앗겨버릴 것처럼 강해서 조금 무서웠다.
알폰스 : 뭘 즐겁게 노닥거리시나요? 저도 끼워주세요.
케이트 : 윽!?
엘버트 님과 반대측에 앉더니 알폰스 씨가 스륵하고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알폰스 : 저기 엘, 이대로 케이트 씨의 피로를 침대에서 치유한 다음 가지 않으시겠어요?
엘버트 님은 마치 주박에서 풀려난 것처럼 문득 내게서 시선을 알폰스 씨에게로 옮겼다.
엘버트 : ............안 돼, 아르.
알폰스 : 후후, 죄송합니다 농담이에요.
(알폰스 씨는 엘버트 님의 제지는 듣는구나...... 그건 종자 같지만.)
알폰스 : 저한테도 물 주세요.
엘버트 : 응......, ......자.
(알폰스 씨에게 엘버트 님이 부어주는 거구나...... 역시 종자같지 않네.)
뒤죽박죽인 두사람의 관계는 알면 알수록 난해했다.
케이트 : 두사람은 언제부터 알았나요?
엘버트 : ......내가 9살. 알폰스도 아마 그정도일 때였을까.
알폰스 : 뭐 대개 그런 분위기의 연령일 때네요.
(그렇게 어릴 때부터 알고지낸 관계구나.)
(소꿉친구라면 허물없는 친구 같은 행동도 어쩐지 납득되네.)
(그렇다고 해도 평범한 소꿉친구라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케이트 : 귀족끼리의 사교장에서 만나신 건가요?
엘버트 : 내 저택에서 만났어. 아르는—
엘버트 : 내 아버지를 진찰하기 위해 다니던...... 의사의, 조수를......
(어, 어라......?)
(엘버트 님...... 어쩐지 점점 안색이 나빠져가.)
그러자 엘버트 님의 사고를 막듯이 알폰스 씨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알폰스 : 어디서 만났는지 누구를 도왔는지는 어떻든 상관없지 않나요.
엘버트 : ......!
엘버트 : ......아. ......그렇네.
(엘버트 님과 알폰스 씨가 만났을 때, 뭔가가 있었던 걸까......)
(신경쓰이지만...... 지금은 묻지 않도록 하자.)
그 "무언가"는 엘버트 님을 창백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폰스 씨는 그 "무언가"에게서 그를 도망치게 해주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알폰스 : 그럼 다음은 영애들의 전장으로 가죠.
케이트 : 전장...... 사교 파티인가요?
엘버트 : 그래...... 확실히 파티는 전쟁같은 거라고 들은 적이 있어.
알폰스 : 늘 그녀들의 전투의 불씨가 되는 당신이 "들은 적이 있어"라니......
알폰스 : 영애들이 가엽네요.
케이트 : 그건 알폰스 씨도 마찬가지인건?
알폰스 : 제게 모여드는건 거북한 사교계를 곤란해하는 분들입니다.
알폰스 : 저, 노는 상대로는 뒤탈없는 우수한 물건이지만 평생의 반려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말이죠.
엘버트 :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알폰스 : 네네, 당신이 절 아주 좋아한다는 건 알고있습니다.
알폰스 : 데뷔탕트에는 암살자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알폰스 : 파티 회장이 저희에게도 암살자와의 전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엘버트 : ......사람이 많이 드나들기도 하지. 좋다고 할 때까지 우리에게서 떨어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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