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의 저택에서 개최된 이번 시즌 첫 사교파티는,
갓 데뷔해 반짝거리는 영애를 포함해 연령대도 다양한 귀족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엘버트 : ......폐하, 손을.
꿈꾸는 눈동자의 영애 : 봐, 엘버트 님이셔......!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까......
키가 큰 영애 : 알폰스 님도 계셔...... 폐하와 교우가 있는걸까, 역시나네.
프릴 드레스의 영애 : 저기 오라버니, 저 두분에게도 다가가도 괜찮을까요? 저, 데뷔했으니까요.
젊은 신사 : 남 듣기에 그런 말은 하지 않겠지만, 알폰스·스윌바티카만은 그만두렴...... 가지고 놀아진 채 끝이니까.
검은 부채를 든 부인 : 엘버트 님은 사교장에 그다지 안 계시지. 찬스를 놓치면 안된단다.
검은 부채를 든 부인 : 인상에 남을만한 인사를 하거라.
(두사람 다 걷는 것만으로 소문의 중심이네...... 소문의 방향성은 정반대지만.)
등을 곧게 펴고 턱을 당겨 위엄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귀빈석에 조용히 앉았다.
조금 후...... 문득 어떠한 사실을 깨달았다.
영애들이 외견이 아름다운 두사람의 등장에 열광한건 한순간으로,
모두 긴장한 모습으로 힐끔거리며 내 쪽에 시선을 향했다.
(어째서일까......)
옆의 엘버트 님께 시선을 보내자 바로 눈치채고 귓가에 바싹 붙어왔다.
금색 머리카락이 언뜻 흔들리자 홀에서 소리를 죽인 비명이 올라왔다.
엘버트 : 무슨 일 있어......?
케이트 : 영애분들이 어쩐지 긴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소리를 죽이고 물어봤다.
엘버트 : 아...... 폐하께 비난받지 않으려고, 가 아닐까......
엘버트 : 폐하의 평가에 따라 인생이 좌지우지 되기도 하니까.
(......과연.)
다시금 영국 여왕이 짊어진 책임과 그 영향력의 강대함에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하지만 내 기분을 신경쓸 필요는 원래 없어...... 폐하가 아니니까.)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곤 해도...... 내 일거일동이 주목받는 것 자체가 적은 편이 좋아.)
케이트 : 엘버트 님...... "폐하"가 자리를 벗어나는 건 매너 위반인가요?
엘버트 : ......!
알폰스 : 후후, 당신 쪽에서 제안하다니 의외네요.
케이트 : 네......?
알폰스 : 원래 도중에 "폐하"에겐 자리를 떠나도록 할 예정이었습니다.
케이트 : 그런가요......?
알폰스 : 네. 그야 폐하인 채로는 당신이 파티를 즐기지 못하지 않습니까.
(내가, 즐겨......?)
엘버트 : 네가 이렇게 여기에 앉아준 덕분에,
엘버트 : "폐하가 와 있다"고...... 이 회장의 어딘가에 있을 암살자에게 전해주는 건 끝냈어.
알폰스 : 남은건...... 암살자가 꼬리를 드러낼 때까지 지나칠 정도로 크게 즐기도록 하죠?
케이트 : 설마 갈아입을 옷까지 준비되어 있을줄은......
알폰스 : 후후...... 놀라셨나요?
나는 여왕폐하를 가장하기 위한 무거운 왕관이나 베일을 벗고,
대신 화려한 귀족 영애다운 드레스를 몸에 두르고 다시 홀로 돌아왔다.
알폰스 : 다행이네요, 어디에서 어떻게 봐도 귀족 영애예요.
엘버트 : 그래...... 잘 어울려.
케이트 : 가......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거였구나...... 영애로서의 행동도 공부해뒀으면 좋았을텐데.)
케이트 : 제 행동, 귀족 영애로서 이상한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엘버트 : ......이상해도 괜찮아. 평소대로 행동해준다면 그걸로.
케이트 : 하지만 수상하게 여기진 않을까요?
엘버트 : 내가 곁에서 따르는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행동을 해도...... 귀족으로 봐주는 것 같으니까.
엘버트 : ......전례가 있으니까 틀림없어.
(전례......?)
(전례라는 건 누구를 말하는거지......?)
문득 파티에 오기 전에 들은 말이 떠올랐다.
엘버트 : 내 저택에서 만났어. 아르는—
엘버트 : 내 아버지를 진찰하기 위해 다니던...... 의사의, 조수를......
(알폰스 씨는 의사의 조수로 엘버트 님의 저택을 방문한거지......?)
(귀족 분이 그런 일을 하는걸까? 그것도 9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혹시...... 알폰스 씨는 귀족이 아니고 "전례"는 그에 대한 것이라던가.)
(............역시 망상이 지나치려나.)
사고를 새로 바꿔 회장의 모습을 엿봤다.
막 데뷔한 영애들은 방금 전보다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행이다...... 쓸데없이 긴장하게 만들지 않고 끝나서.)
—그러자 소문을 좋아하는 듯한 부인이 스윽 다가왔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한 부인 : 어머, 알폰스 님에 엘버트 님. 두사람 다 폐하를 따르는 건 괜찮니?
알폰스 : 그게...... 폐하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져서.
엘버트 : ......안쪽에서 혼자 쉬고 싶으시다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한 부인 : 어머어머, 큰일이네! 가여운 일이야......
(혹시 "폐하 혼자"라는 소문을 퍼뜨려서 암살자를 불러내려고 하는 걸까.)
(그럼 소문이 충분히 나돌 때까지 여러 사람에게 퍼뜨리려는 걸지도. 방해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두사람에게서 세 걸음 떨어져 귀족 무리에 뒤섞이려고 샴페인을 손에 드니—
??? : 레이디, 이야기를 나눌 영예를 받을 수 있을까요?
케이트 : ......네......!?
옆에서 소리도 없이 남성이 나타나 깜짝 놀라 샴페인을 흘려버렸다.
날씬한 신사 : 아아, 이것 참 실례를. 제 탓에 아름다운 손이 더러워졌군요.
케이트 : 아, 아뇨, 괜찮아요. 닦으면 되니까요......
날씬한 신사 : 상냥한 분이시군요. 겉모습만이 아니라 마음도 아름다우시네요.
날씬한 신사 : 저와 이후에 춤춰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사죄의 의미로 최고의 기분을 맛보게 해드리겠습니다.
(앗...... 이건 혹시—)
간신히 내가 결혼 상대를 찾는 귀족 영애로 보이고 있고,
눈 앞의 상대에게 유혹당하고 있는거라고 깨달았다.
남성은 내 손을 닦기 위해서인지 손수건을 꺼내들더니 이쪽으로 손을 뻗어왔다.
(임무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온건하게 거절해야겠지.)
케이트 : 죄송해요, 저—
엘버트 : —그녀는 내 파트너야.
내가 입을 여는 것보다 먼저 어깨가 끌어안아졌다.
엘버트 : ............이 이상 다가오지 말아주겠어?
날씬한 남자 : ......그리티아 백작......?
엘버트 : 케이트...... 괜찮다고 할 때까지 내게서 떨어지지 말라고 말했을텐데.
케이트 : 죄송해요......
엘버트 : 손이 젖어있어...... 다친 곳은?
케이트 : 괜찮아요, 조금 샴페인을 흘려버린 것 뿐이에요.알폰스 : 정말이지 곤란한 사람이네요. 흘려버린건...... 여기, 인가요?
알폰스 씨도 곁에 다가오더니 보여주듯이 내 손을 정중하게 잡았다.
알폰스 : 안되죠, 마음 편하게 다른 남자를 허락하면. 당신의 젖은 피부를 농락하는 건 제 특권이잖아요?
부드러운 손수건으로 피부가 닦여졌다.
엘버트 : 그래서............ 너는, 누구야?
날씬한 신사 : ......시, 실례하지!
내게 말을 걸어온 남성은 격하게 동요한 모습으로 테이블에 부딪히며 멀어져갔다.
(......어설픈 짓을 해서 의심받지 않고 끝나서 다행이지만.)
(이 두사람이 하는 방식은 조금 심장에 나쁠지도......)
케이트 :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엘버트 : 돌아보니 네가 없어져서 놀랐어.
엘버트 : ......멋대로 어딘가에 가지 마.
나를 지켜준 엘버트 님은 미아처럼 중얼거렸다.
케이트 : 네, 조심할게요. 그, 폐하의 소문 쪽은......?
엘버트 : ......눈치챘구나.
알폰스 : 소문을 좋아하는 몇명의 귀에 들어갔으니 십수분 후에는 회장 안의 사람 전부가 알게 될겁니다.
케이트 : ......즉 이제부터 암살자가 움직일지도 모르는 거네요.
지금까지 이상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으니— 입 안에 무언가가 밀려들어왔다.
케이트 : 읍......!?
알폰스 : 어떤가요? 맛있지 않나요, 상류 계급 분들이 먹는 고기는.
내 입에 포크째로 고기를 밀어넣은 알폰스 씨는 표표하게 태연히 말했다.
(화...... 확실히 맛있지만......)
입 안에 퍼지는 감질맛과 부드러운 식감에 폐하의 대리를 한다는 긴장으로 잊고있던 공복이 한순간에 되살아났다.
알폰스 씨는 그런 내 턱을 꽉하고 들어올렸다.
알폰스 : 아, 단정하지 못한 얼굴. 귀엽네요, 더 보여주세요.
케이트 : 하지만 이런 먹는 방식은 매너 위반인건......
알폰스 : 쉿......
알폰스 : 이 이상 케이트 씨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도록 보여주려고 하는 작전입니다.
케이트 : 스스로 거절할 수 있으니까요!
엘버트 : 케이트...... 저항해도 의미가 없을 때도 있어.
엘버트 : 예방할 수 있다면 해두는 편이 좋아.
엘버트 님의 아름다운 손끝이 포크에 노란 과실을 꽂더니 내 쪽으로 내밀어졌다.
(엘버트 님까지......)
케이트 : 저기, 스스로 먹을 수 있으니까......
엘버트 : ......? 그건 알고있어.
엘버트 : 입을, 열어줘.
(엘버트 님은...... 의외로 강압적이네......)
포크 끝의 과실을 부득이하게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으으...... 부끄러워......)
(아 하지만 이 사과 콤포트, 엄청 맛있어.)
엘버트 : ...... 입가에 시럽이 묻었어.
케이트 : 어...... 여기인가요?
엘버트 : 아니...... 이쪽.
엘버트 님은 손끝으로 내 입술을 닦더니 손가락에 묻은 시럽을 낼름 핥았다.
엘버트 : ............달달하네.
(이 두사람......)
(조금 심장에 안 좋다, 수준이 아닐지도.)
알폰스 : 자, 장난치는 건 이 정도로 해두죠.
엘버트 : ......그래. 슬슬 갈까.
케이트 : ......! 암살자가 움직였나요......?
알폰스 : 네. 유쾌하고 귀찮은 단죄의 시간입니다.
(두사람에게 농락당하기만 해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대화를 하고 있을 때에도 불실한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니—)
두사람이 두르는 공기에 얼얼하고 차가운 것이 섞였다.
깊은 어둠을 아는 어두컴컴한 눈에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알폰스 : —아 맞다, 임무가 끝나면 상을 주세요, "여왕 폐하".
케이트 : 네!?
알폰스 : 힘든 일에는 상응하는 보상이 기다리지 않으면 할 마음이 들지 않아요.
알폰스 : 이 임무는 폐하의 명령이니까...... 당연하죠?
케이트 : 저기, 저도 폐하의 명령으로 폐하의 대리를 하고 있을 뿐으로......
알폰스 : 그러니까 보상도 대리로.
케이트 : 그, 그런 바보같은......
엘버트 : ......나도, 받고싶네.
케이트 : 엘버트 님까지......
알폰스 : 결정됐네요. 어떤 보상을 받게 되려나요.
엘버트/알폰스 : ......기대할게/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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