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배달도 익숙해지니 어려운 일도 아니네. ...... 다음이 마지막 한 집이야.)
그건 늘어선 타운하우스 중에서도 한층 더 훌륭한 건물이었다.
(어라...... 이 저택, 우편함이 없어.)
(밤이라 그다지 큰 소리도 낼 수 없고...... 어쩌지.)
살짝 현관문에 닿으니 끼익...... 하는 미약한 소리와 함께 안쪽으로 문이 열렸다.
(열려있어. 부주의하네.)
케이트 : 실례합니다, 우편국에서 온 사람이에요. ......누구 없으신가요?
현관문을 지나 불이 꺼진 어두운 현관홀을 들여다보니—
(피아노 소리......?)
어디선가 가벼운 선율이 들려왔다.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 어두운 밤에 울리는 경쾌하고 즐거운 듯한 음색은 어쩐지 이상함을 느끼게 했다.
(......치고 있는건 분명 이 저택 분이겠지. 편지, 적당한 곳에 두고가면 분실될지도 모르니까.)
(제대로 전해주지 않으면.)
쭈뼛쭈뼛 한걸음을 내딛어봤다.
윤을 낸 홀을 걷는 자신의 발소리가 피아노 소리와 뒤섞였다.
(어쩐지, 진정이 되지 않아.)
직무를 다하고 있을 뿐인데 어쩐지 결정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빨리 건네주고 돌아가자.)
(소리는...... 이 앞의 그레이트 홀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
문고리를 노크해보지만 선율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잇따르는 음표들이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불안에 재촉당하듯이 문고리에 손을 대었다.
케이트 : 저기...... 실례합니—
케이트 : —다.
(............응?)
—새빨간 분수가 눈 앞에서 내뿜어졌다.
울컥, 울컥하고 맥박이 치듯이 선홍색의 비말을 내뿜는 것이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뭐, 뭐야......?)
발 밑으로 굴러온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스스로 쥔 나이프를 목에 꽂아넣은채— 절명해있었다.
케이트 : —윽!?
힉하고 목구멍에서 소리가 났다. 미적지근한 액체가 볼에서 방울져 떨어져, 불쾌감이 등골을 스쳐지나갔다.
(어째서.)
??? : 이런 이런, 설마 관객이 있을줄은.
뒤따르듯이 목소리가 들려와서 경련을 일으킨 그대로 목이 떨렸다.
시선을 주변으로 돌리자—
어둠보다 짙은 검은 8개의 그림자가,
어렴풋한 달빛에 비춰진 나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뭐하는 자인지 지켜보기라도 하듯이. 혹은......
어떻게 유혹해내서 덫에 걸려들게 할지 계략을 꾸미듯이.
그 중의 한 명이 홀에 설치된 피아노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붉은 눈동자의 남자 : 뭐야, 낮에 마주친 울새 아닌가.
케이트 : 저......기......, 어......?
그건 해질녘의 런던에서 만난 붉은 눈동자의 남성이었다.
그 이상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을 물끄러미 마주봤다.
고양이 같은 남자 : 윌의 지인? 우리들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
붉은 눈동자의 남자 : 거리에서 조금 이야기 했을 뿐이다, 리암. "크라운"에 대해서는 모른다.
("크라, 운"......?)
고양이 같은 남자 : 그렇구나, 그럼 곤란하네. 어떻게 할까......?
완벽한 범죄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상태로, 남성이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즐거워보여...... 이런, 상황인데도)
붙임성 있는 분홍색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가득차 반짝이고 있었다.
표표한 남자 : 진심으로 겁먹은 상황에 미안하지만 이거, 무대 연극의 무대장치야.
척 보기에도 플레이보이 같은 남성이 사체를 턱짓하며 곁눈질 해왔다.
케이트 : 거, 거짓말......
볼을 따라 흐르던 미적지근한 감촉을 떠올려, 무심코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표표한 남자 : ......믿는 척 하는 편이 당신의 몸을 위한 일이었는데 말이지.
표표한 남자 : 어쩔래, 윌.
붉은 눈동자의 남자 : 그거야 물론— 데려가야겠지, "궁전의 사신"에게.
음험한 눈의 남자 : 칫...... 그니까 문 잠궈두라고 말했잖냐.
엽총의 남자 : 하하, 설마 불법침입까지 할거라곤 생각 못했어. 꽤나 나쁜 아이구나, 아가씨?
장신의 남자 : 이쪽으로, 오는 게 어때? 어차피 더이상 도망칠 수 없으니까.
"도망칠 수 없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공포가 전신을 스쳐지나갔다.
(어쩌, 지...... 어쨌든 도망쳐야......!)
떨리는 다리를 채찍질하며 뒤로 물러나려고 한 그 순간—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나를 사로잡았다.
붉은 눈동자의 남자 : 오렴, 가련한 울새.
(응!?)
그가 달콤하게 속삭인 순간— 내 다리가 어째선지 멋대로 그의 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짓말...... 어째서!? 멈추지 않아......!!)
케이트 : 시, 싫어......—!
내 의사를 무시해서 움직인 다리는 그의 눈앞에서 뚝하고 멈춰—
붉은 눈동자의 남자 : 실례.
그는 마치 왈츠라도 출 때처럼 내 허리를 살짝 끌어당겼다.
(죽을거야—)
꽉하고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장미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며 부드러운 감촉이 볼을 슬쩍 쓰다듬었다
(어라......?)
붉은 눈동자의 남자 : 이걸로 됐다.
(아......)
그는 미소짓더니 살짝 나를 그 팔에서 해방시켰다.
(혹시, 아까 튄...... 피를,)
닦아준거구나.
갑작스럽게 힘이 빠져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붉은 눈동자의 남자 : 자기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윌리엄. 윌리엄•렉스.
달빛을 등지고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윌리엄•렉스......)
핏빛으로 물든 손끝이 유혹하듯이 천천히 열렸다.
윌리엄 : 너를 오늘밤, 만찬에 초대하지. 손님, 이름은?
'이케맨 빌런 > 프롤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롤로그 6.전속 계약 (0) | 2023.03.29 |
---|---|
프롤로그 5.중대한 비밀 (0) | 2023.03.29 |
프롤로그 4.사신이 기다리는 성으로 (2) | 2023.03.29 |
프롤로그 2.선과 악의 경계 (0) | 2023.03.28 |
프롤로그 1.인생이 동화라면 (0) | 2023.03.28 |